정우신 시인
안녕하세요? 시간 내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초대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에 앞서 가벼운 질문드립니다. 요즘 어찌 지내시고 계신가요?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듯 언제나 제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끝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상에선 주어진 삶의 시간이 허비되지 않도록 루틴을 만들어 수행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새해 꼭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2년 전에 하프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요, 올해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최근 다섯 번째 시집『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을 발간했습니다. 소개 부탁합니다.
출판사에서 언급하여 주신 대로 '죽음과 절망', '시간과 흐름', '사랑과 교육'이라는 주제로 시집을 꾸려보았습니다. '미래'와 '미장센'이 지닌 수직과 수평의 시간을 혼합하였습니다. 현실에서 무겁게 느껴지던 것을 가볍게 치환하고, 아주 멀게만 생각되던 것을 가까이 있는 것으로 바꿔가며 언어 실험을 하였습니다.
정우신 지음 / 아침달 / 12,000원
절망과 사랑이 교차하는 시의 회로에 대해 부연해 주십시오.
'절망'과 '사랑'이라는 시어가 의미화되기 이전의 단계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움직이는 물질은 무의식, 아토포스, 미래, 신 등의 속성을 지녔습니다. 생활로부터 추동되는 고통과 슬픔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변화하여 다가오는지 차근히 언어로 옮겨보고 싶었습니다. 언어화되기 이전의 물질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교차점을 이루며 내일을 담보합니다. 인간이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상호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시의 회로를 구상하였습니다.
기계와 식물이 조화를 이룬 문장들과 이미지가 새롭습니다. 의도한 바가 있을까요?
기계와 식물의 이질성으로부터 인간의 '살'과 '신체'의 본질을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말한 '초음속 쓰나미(Supersonic Tsunami)'의 시대에 놓인 인간의 이미지를 그려내고자 하였습니다.
사랑과 절망에 대한 시적 개연성도 시인의 목소리로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사랑'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자 도달하는 순간 사라지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였다면 이 시집을 쓰는 동안에 '사랑'은 매우 사소한 것, 주변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생각을 전환하였습니다.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아침마다 '절망'을 껴안고 시작되지만 저는 정작 '절망'의 본질을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아울러서 '절망'과 '사랑'과 '언어'의 거리를 재측정하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개할 작품 한 편을 골라주십시오.
이윽고 접어들었습니다
발이 가는 대로 걷다 보면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생필품을 잔뜩 사면 당분간 괜찮아질 듯합니다
이런 마음을 먹은 건 분명히 내 뜻이지만
저수지에 내리는 눈발을 바라다보면
어쩐지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리할 것이 없어서 집을 나왔습니다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겨울 산장」 전문
시를 들으며 첫 시집 『비금속 소년』(파란 / 2018)이 떠올랐습니다. 표제작을 읽고 가겠습니다.
여름이 소년의 꿈을 꾸는 중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곤 했다 우리는 장작을 쌓으며 여름과 함께 증발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화산은 시력을 다한 신의 빈 눈동자 깜박이면 죽은 그림자가 흘러나와 눈먼 동물들의 밤이 되었다 스스로 녹이 된 소년, 꿈이 아니었으면 싶어 흐늘거리는 뼈를 만지며 줄기였으면 싶어 물의 텅 빈 눈을 들여다보았다 멀리,
숲이 호수로 걸어가고 있다 버드나무가 물의 눈동자를 찌르고 있다 지워진 얼굴 위로 돋아나는 여름, 신은 태양의 가면을 쓰고 용접을 했다 소년이 나의 꿈속으로 들어와 팔을 휘두르면
나는 나무에 가만히 기댄 채 넝쿨과 담장과 벌레를 그렸다 소년은 내가 그린 것에 명암을 넣었다 거대한 어둠이 필요해 우리는 불을 쬐면서 서로의 그림자를 바꿔 입었다 달궈진 돌을 쥐고 순례를 결심하곤 했다
소년은 그림자를 돌에 가둬 놓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나의 무릎에 이어진 소년, 이음새를 교환할 때마다 새 소리를 냈다
-「비금속 소년」 전문
정우신 지음 / 파란 / 10,000원
정우신 시인의 작품은 대부분 시적 '리듬과 이미지'가 자연스럽습니다.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요?
과찬입니다. 아직 '리듬과 이미지'를 잘 모릅니다. 아주 가끔 길을 걷다가 무언가 먼저 다가올 경우가 있는데 정말 가볍게, 툭, 신체를 통과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모여서 시의 리듬과 이미지의 재료가 되는 것 같은데 막상 또 시를 쓰다 보면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어떤 이미지를 보고 감동과 충격이 동시에 발현할 때 언어의 몸에 맞는 리듬이 생성되는 듯합니다.
덧붙여 절묘하게 구사하고 있는 시적 '기하학'도 궁금합니다.
언어와 언어가 만나는 점, 선, 면, 부피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행과 연의 배치, 제목과 본문의 연관성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의 관계는 자의적이고 유동적입니다. 시집(시의 집)에서 신체의 집을 이루는 정서가 발생합니다. 전류가 흐릅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사랑'의 차원이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초적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시인이 가진 창작 원칙이 있을까요?
현실과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실체, 그것이 나의 마음을 횡단한 것이라고 믿고 시를 쓰고자 합니다. 최근의 작품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도록 퇴고를 거듭합니다.
출강 중인 고양예고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이 말하는 시가 궁금합니다.
학생들은 시가 좋다고 말하고 동시에 어렵다고도 합니다. 시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기의 삶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듯합니다. 세대와 분위기에 따라서 주목받는 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좋은 시는 여전히 읽히고 창작되고 있습니다.
학생들로부터 전이된 정우신 시인의 시세계가 있을까요?
젊은 감각과 언어를 지니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늑골에 점층적으로 쌓이는 서정을 잘 마주해야 할 듯합니다.
참여 중인 '한국작가회의 성평등위원' 활동을 소개해 주십시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이 없는 존엄한 평등의 문화를 이뤄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쓰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작가들의 플리마켓을 열어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내 '창작 자조 모임' 활성화를 위해 기부를 진행하였습니다.
정우신 시인이 생각하는 시와 시인의 사회적 역할을 듣고 싶습니다.
시인도 양극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만 있는 사람과 '시'도 있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대가 증발한 지 오래고 지금은 '가난과 외로움'이라도 '삶'의 그림자로 삼아 언어를 끝까지 밀어붙이고자 하는 시인이 있다면, 한편 '시'가 아니더라도 다재다능한 사람들의 언어놀이가 있습니다. 현대의 속도에서 시와 시인의 사회적 역할은 그저 살아남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시-시인'은 고통받는 자들의 타자가 될 뿐입니다.
시인의 길이 참 고되네요. 향후 계획이 무엇입니까?
온몸으로 시를 사는 사람이 시인이니까 시를 부지런히 쓰고 다음 시집을 기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AI시대에도 시인으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시집 제목에 영화 용어가 있습니다. 독자들께 권하고 싶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해 주십시오.
영화 <가타카>를 추천드립니다. SF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시대에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가타카>는 유전자 판별로 운명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부적격자 주인공이 우성 유전자를 타고난 자의 신분을 빌려 우주항공회사에 잠입해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더 하고픈 말씀과 독자들께 인사 부탁합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새해 좋은 일 가득하시고 늘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앤드류 니콜 감독/ 106분
정우신 시인은 201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이 있고 계간 《파란》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성평등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광운대와 고양예고 문예창작학과에 출강 중이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