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 전문
이 시는 도종환 시인의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에 실려있다.
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됐을 때, 다가온 현실이 너무 높고 단단한 벽이라 주저앉고 싶을 때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시다. 보통 인간은 절망을 피하려고 하지만 이 시는 절망을 잡고 놓지 말라고 한다. 절망을 인식할 때 비로소 그 벽을 넘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잎은 다른 잎을 붙잡고 함께 벽을 넘는다.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서로를 연결하여 새로운 생명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 연결은 결국 벽의 의미까지 바꾸게 된다. 질 들뢰즈가 말한 리좀(Rhizome), 즉 뿌리줄기의 방식과 닮아있다. 기존의 '정해진 것, 고정된 것, 강제된 것'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나 방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나무가 혈통 관계라면 리좀은 결연 관계인 것이다.
가끔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되어 포기할 때가 있는데 이 시는 "혼자"와 "혼자"가 모여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손내밀 용기를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일어나게도 하는 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