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향숙 시인
현관 앞에 국화 화분 하나를 사다 놓으니
가을이 왔다 계절은
이렇게 누군가 가져다 놓아야 오는 것인가
저 작은 그릇에 담겨진 가을,
노란 가을을 들여다보며
한 계절 내가 건너가 가져오지 못한 시간들을 본다
돌보지 못한 시간 속에도 뿌리는
있다, 모두 살아 있다 흙 속 깊이
하얀 실뿌리를 숨기고 어둔 흙 헤집어
둥근 터널 그 속으로, 먼 내 속으로 오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쭈그리고 앉아 바라본
국화의 근본이여, 모든 계절의 초입이
나 몰래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어
손을 내밀어 그냥 가져다 놓기만 하면 분명
한 계절의 꽃 필 법도 한 것이다
국화는 현관 앞 계절의 환한 등을 밝히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국화를 보며 아! 노란 국화,
하며 가을을 말하기 시작한다
내가 가져다 놓은 한 계절, 저 국화 화분은
한 바가지의 물을 건네주길,
해를 향해 화분의 방향을 가끔씩
누구도 아닌 내가 손수 돌려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고영민 시인의 시 '국화 화분' 전문
고영민 시인의 시집 《악어》 에 실린 시다.
돌보지 못하고 보낸 시간 속에도 뿌리는 있다. 모두 살아 있다. 내가 부르기만 한다면 하얀 실뿌리들이 나의 어둔 마음을 헤집고 내 안으로 들어온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삶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가 지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책에는 경쟁 상대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이치로 작가는 모든 상대를 "수직" 이 아닌 "수평" 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억지로 하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말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자연과 인간의 내면이 맞닿는 지점을 찾고 존재의 상호성을 그린다.
"국화 화분"을 사다 놓고 들여다보고, 한 바가지의 물을 건네주고, 해를 향해 화분 방향을 돌려놓는 것도 내가 해야 나의 꽃이 된다. 삶은 실행하는 것이지, 지켜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의 삶은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불을 밝혀야 한다. 올 가을엔 국화꽃에 유난히 눈이 자주 간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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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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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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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