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매역은 아득했다
봄과 가을 사이에 있었다
새들과 맨드라미가 와서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할 일도 없고 한 일도 없이 배가 고파지면
나는 강매역 개찰구에 서 있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아득히 논밭 사이를 건너 강매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백마나 송추쯤에 내려서
다시 강매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강매역은 아득했다
새들과 맨드라미와 내가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일도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류근 시인의 시 '강매역' 전문
2025년 《녹색평론》 가을호에 실려있는 시이다.
"강매역"은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역인데 1971년에 개업했다가 행신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2009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2014년부터 재개되어 운행되고 있다.
그래서인가 시에서도 "강매역"은 특정한 시공간에 고정되지 않고 현실과 상상 사이, 그 경계에 자리하는 느낌이다. 머무르고 싶지만 곧 떠나야하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득한 공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새들, 맨드라미와 함께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아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기다림과 부재를 동시에 경험하는 곳이다.
시를 읽다보면 무언가 아득하지만 마음은 홀가분해짐을 경험하게 된다. 언젠가 떠나야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이 목적없는 기다림이겠다 싶다. 그러다가도 빅터 터너가 말한 리미널리티(Liminality)가 떠오르기도 한다. 기존의 질서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새로운 질서가 교차하는 '과도기적 경계'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긍적적인 변화를 꿈꾸게 한다.
지금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이다. 도착과 출발, 한 일과 할 일 "사이"에서 예전과 다른 가을을 계획하는 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