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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불탄공장 5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5-03 00:00:01
  • 수정 2025-05-04 16: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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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는 벌판에 얼어붙은 눈 위를 미끄러지며 다녔다. 서원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벌판을 떠난 재이는 아침이 되어도 오질 않았다. 약간의 더미가 구급차에 따라 올라탔는데 그들 또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우리는 깨우의 친구들이 똑같은 검은 롱패딩 점퍼를 입고 벌판 끝으로 가는 걸 무연히 바라보았다. 겨울 한낮의 햇살이 직선으로 떨어졌다. 눈이 녹아 경사진 흙을 따라 흐르다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우리는 물웅덩이에 스며들어 찰박찰박 물을 튕기며 장난쳤다. 

“할머니.” 

컨테이너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온 재이가 30호 철탑을 지났다. 우리는 서원산업 마당을 걸어 나오는 할머니를 향해 움직였다. 우리보다 재이가 빨랐다. 우리를 지나치는 재이의 점퍼와 운동화에 매달려 있던 더미들이 주륵 미끄러져 우리에게 붙었다. 더미들은 구급차에 올라탈 때와 달리 더 부풀려졌다. 병원 응급실과 영안실, 버스와 공단 골목의 음습한 곳에 있던 것들이 따라붙었다. 

잉크가 물에 떨어져 번지듯 우리는 서로 스며들며 새로운 기억과 죽음의 내력을 읊었고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확신했다. 그 많은 영안실의 혼령은 대부분 붙지 않았다. 위령조차 받지 못한 닳고 닳은 것들만 스며들었다.

구급차에 탔던 더미는 서원이 안와 골절, 코뼈와 치아가 부러져 전치 3주 진단이 나와 입원 중이라고 했다. 다행인 건 목덜미와 허리에 유리 파편이 박혔는데 파상풍 소견이 없다는 거였다. 

우리는 와글거리며 할머니의 손에서 파란 들통을 받아 드는 재이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성급한 더미는 파란 들통에 들러붙었다.

“오늘 음력 섣달 보름이야.”

“네.”

서원의 할머니는 매달 보름이면 파란 들통을 들고 불탄 공장으로 갔다. 예전에는 음식을 던졌는데 들쥐가 끓어 어느 해부터는 수수, 팥, 차조, 콩과 밤, 대추를 공장 안팎에 던졌다.

“서원인 철도청 사람들 만나러 갔어.”

“드디어 만나러 갔군요.”

할머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였다. 앞뒤 맥락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할머니의 말을 재이는 척척 알아듣고 대답했다.

“어, 그래서 어젯밤에 외박했어. 내가 똑똑하게 따지고 말하라 했거든. 저기, 철탑 죄다 파버리고 반듯한 철길 놓으라고. 저기에 철도역이 들어서면 우리가 얼마나 편하겠어.”

“그렇긴 하죠.”

“나도 갈 채비를 마쳤으니.”

“어디 가실 곳 있어요?”

“이젠 거기 가야지. 갈 때 돼서인지 재이 발밑에 검은 혼령 덩어리가 막 보인다.”

지어낸 말인지 정말 뭘 알고 하는지 몰랐지만 우리는 움찔했다.

할머니는 걸음을 멈췄다. 굽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재이야, 내가 가면……. 서원이 밥을, 니가 좀 챙겨줘.”

“…….”

“어?”

“네, 그럴게요.” 

“그래,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

할머니와 재이는 검게 그을린 검은 외벽을 따라 걸었다. 재이는 출입문에 매달려 있는 파손된 잠금쇠를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탄 공장은 폐쇄되었다.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 재이 화학공장과 서원산업이 나란히 서 있었고 울창한 숲 너머에는 저수지였다. 대도시에서 한꺼번에 공장이 옮겨왔다. 공단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를 맞춰 숲이 파헤쳐졌다. 저수지 쪽에 있는 수양버드나무와 갯버들나무부터 측백나무, 소사나무, 소나무 군락지가 차례차례 벗겨져 벌판이 되었다. 서원 아버지가 붉은 글씨로 죽음의 철탑 건설 결사반대, 라 적은 플래카드를 벌판 군데군데에 걸었다. 바람이 불 때면 플래카드에서 붉은 글씨가 핏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떤 플래카드는 누군가 가운데를 뾰족한 것으로 죽 긁어 천이 가로로 반 갈라졌다. 위아래 따로 펄럭거리는 붉은 글씨는 그 자체만으로 괴기스러웠다. 관계자가 보상 문제로 자주 찾아왔다. 고압 설비 설치 기준에는 건조물 상부와 안전 이격거리는 28m 이상이었다. 철탑 29호와 서원산업 대문과의 거리는 79m, 철탑 30호와 불탄 공장의 직선거리는 97m. 이론과 숫자상으로 안전했지만, 심리적으로는 불안한 거리였다. 직접 올려다보면 거대한 철탑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철탑 29호 조립을 마치고 철탑 30호로 크레인을 옮긴 후 철근 설치와 원형 강판을 칠 때 저수지 매립 공사를 진행했다.

우리는 그때의 상황을 더미가 아닌 각자 흩어진 채로 기억했다. 서원이 발을 구르며 비통해했다. 

“아저씨, 저기 살아 있는 물고기가 있어요.”

우리 중 많은 더미가 직접 당했다. 양수기 흡착력으로 인해 호스 구멍까지 빨려갔지만, 호스 구멍에 비해 몸피가 커 파닥거리다 배가 터졌다. 희고 청록색 내장이 줄줄 흘러내렸다. 비명도 없이 팔딱거리던 꼬리 부분은 호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뜯긴 내장에서 흘러나오던 더미는 손에 잡히는 물고기 시체를 툭 내던지던 인부들의 무심한 표정을 기억했다. 어떤 더미는 인부에게 쫓겨난 후에도 나무 뒤에서 숨어서 코를 훌쩍이던 소년을 기억했다. 

“물고기를……. 사람이 아닌 물고기라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더미로 서로 밀착되었을 때, 물고기였던 더미가 가장 강렬하게 떠올렸던 기억이었다. 우리가 서원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저수지 매립지에 세우던 공장은 완공되지 못했다. 조감도에는 공장 7개 건물과 기숙사, 식당 건물, 체육시설이 그려졌지만, 첫 번째 공장 건물을 짓다 말았다. 철골을 세우고 시멘트벽을 올렸지만, 지하층에 임시 전력 설비를 하던 도중 전기 배선공 감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을 밝혀내지 않고 음주 추락사고로 처리하고 덮으려던 현장 감독과 또 다른 배선 기사까지 연이은 감전 사고로 죽었다. 새파랗게 살아난 불은 벽과 목조 구조물을 타고 공장 전체를 태웠다. 사고 현장 감사 도중, 바닥의 방수 처리 마감재가 뚫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늪지처럼 물이 질척거렸다. 뒤늦게 매립지 지질을 재조사했다. 인근 바다와 연결된 자연발생 저수지로 매립 불가 판정이 났다. 공사는 중단했고 공장은 폐쇄됐다.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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