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말에 여자는 그렇다는 호응을 하며 누런 종이봉투에 고기를 싸서 할머니에게 줬다. 할머니가 허리춤을 뒤지며 지갑을 꺼내려는 기척을 보이자 여자가 할머니 손을 잡았다.
“아이고 엄니. 수양딸이라 계산하려오? 그냥 가세요.”
수양딸이라는 말에 나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짙게 그린 눈썹을 지우면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모아놓은 것처럼 하얗고 밋밋했다. 동그란 얼굴에 뺨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할머니가 수양딸한테 값나가는 것을 다 가져다 바친다고 말했다. 관사 여자들과 반지 계를 했는데 다른 집 여자들은 다들 제 손가락에 반지를 해 끼웠는데 엄마는 계를 타 할머니 금가락지, 은비녀를 해줬는데 그걸 다 수양딸한테 줬다며 억울해했다.
해주옥에서 나와 할머니는 누런 종이에 싼 고기를 민석에게 줬다. 입술에 번들거리는 기름을 혀로 핥던 민석이 받았다. 할머니는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에는 빼곡하게 술집과 상점이 있었다. 음식점은 대부분 고깃집과 물닭도리탕 집이었다. 검은 탄이 쌓인 길은 질척거렸다. 장갑을 낀 사내가 하얀 탄을 길에 던지고 집게로 깨다 발로 밟았다. 음식점 대부분은 연탄 연료를 사용해 연탄가스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로 내 뱃속은 뒤틀렸다. 할머니는 골목 사이를 돌고 돌았다. 막다른 길 끝인 것 같았지만, 모퉁이를 돌면 비좁은 골목이 나왔다. 골목을 돌 때마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검은 얼굴빛의 남자들이 많아졌다. 할머니는 골목 길가에 드럼통을 놓고 호떡과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에 가 호떡을 싸서 민석과 나에게 줬다. 민석은 호떡이 뜨거운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베어 물었다. 뜨거운 흑설탕 국물이 뺨과 턱을 따라 흘렀다. 할머니는 호떡은 먹지 않고 옥수수막걸리 한 사발을 달라고 했다.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 엄지로 입가를 훔치고 오뎅을 먹었다. 나는 할머니가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못마땅해 잔소리하려다가 호떡에서 흑설탕 물이 흘러 호떡을 먹느라 정신이 팔렸다. 민석은 뜨거운 흑설탕 물이 떨어지는 호떡을 착착 접어 한입에 넣고 미처 다 씹지도 않고 양손에 오뎅을 쥐고 호호 불며 미리 식혔다.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로 따뜻한 오뎅 국물을 퍼마시고 나니깐 뒤틀리던 속이 가라앉았다. 할머니는 남은 막걸리를 마저 마시고 입을 쩍쩍, 다시며 아쉬운 듯 그릇을 뒤집어 털었다.
할머니는 미주상회로 들어가 쌀을 배달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좀 보세요, 손님이 미어터져요, 배달 갈 시간이 없어요.”
식료품에서 야채, 생선까지 팔고 있는 상회에는 미처 손님들이 상회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필요한 물품을 불렀다. 할머니는 쌀 다섯 되와 두부, 호박과 라면을 샀다. 주인 남자가 쌀은 한 말씩 팔아야 한다며 툴툴거리며 흰 자루에 담아줬다. 할머니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쌀을 머리에 이고 나머지는 봉투에 담아 나에게 들라며 줬다.
골목과 골목을 되돌아 나와 천변 둑길에 올랐을 때, 무연탄 창에서 검은 무리가 몰려나왔다. 처음에 검은 석탄 더미가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둑해지는 저녁 속에서 석탄 더미가 탄창 노동자들로 변했다. 광부들은 작업 모자를 옆구리에 끼우고 혹은 삽이나 곡괭이 같은 나무 막대 끝에 쇠붙이가 달린 도구를 어깨에 걸치고 검은 목장갑을 털며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가 방금 나온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미 골목에 있는 음식점은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는데 저 인파들이 골목 어디론가 몰려가는 것이 신기했다. 미로 골목과는 달리 철도 관사 마당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9호까지 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아 마당은 탄처럼 새카맸다. 새카만 마당에 홍매만 붉은 향을 품어내며 서 있었다. 할머니가 머리에서 쌀자루를 내려놓고 납작해진 머리 정수리를 긁으며 열쇠를 찾아 나무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부엌의 벽을 한참 더듬다 불을 켰다. 부엌에서 연탄가스 냄새는 가셨고 대신 쿰쿰한 생선 냄새가 났다. 부뚜막에 신문을 펼쳐놓은 생선을 보자 나는 속이 다시 뒤집혔다. 할머니는 집게로 쇠뚜껑을 열었다. 검은 탄의 구멍 사이로 붉은 불꽃이 활활 올라왔다. 할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가 나무 장에서 이불을 꺼내 아랫목에 깔아주었다.
“내일 겨를이 없을 수 있으니 민아는 숙제해라.”
-계속-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