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책을 읽는다
털어도 먼지가 그대로인 책장을 넘긴다
푸른 잉크가 말라 파삭해진 종이
더러는 소금기가 배여 짠내가 났지만
다행히 낯익은 냄새다
찢긴 페이지가 있어 내용을 다 알 수 없는 책
책 끝자리에 까만 얼룩
누구의 손때가 만든 것일까
제본이 너덜너덜해져
내 몸으로 흘러든 문장들을 생각한다
주제의 빈약함을 숨기려 덧붙인 각주
의미를 생각하며 빨간색으로 그은 밑줄
상투적인 문장 옆에 써 놓은 낙서까지
마침표를 찾기 힘들다
바쁘다는 핑계로 읽다가 접어 둔 페이지가 여럿이다
접힌 페이지마다 주름이 깊다
책갈피에 끼워둔 꽃잎과 나뭇잎
그날의 기억이 희미해져 빛이 바랬다
오랫동안 옆에 두고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책
이제 검지로 글자를 꼭꼭 눌러가며
낡고 오래된 책을 정독할 시간이다
-이경숙 시인의 시 '어머니를 읽다' 전문
이경숙시인의 시집 <몸속에 그늘이 산다> 에 실린 시다. 책을 통해 어머니를 되새기며 관계를 돌아보는 가슴 뭉클한 작품이다.
시인인 화자는 어느날 낡고 먼지가 쌓인 책을 읽다가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시인에게 책은 분리될 수 없는 살이고 피인 것처럼 어머니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말라 파삭해진 종이에서 나는 짠내도, 책 끝자리 손때 묻은 까만 얼룩도, 모두 시인의 몸으로 흘러들어 문장이 된 것이다.
가끔 빨간 줄을 그으며 새겨 듣을 때도 있었지만 상투적인 말씀에 딴짓할 때가 많았고 각주를 달며 대들기도 했다. 그렇게 관계는 마침표 없이 이어졌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에 찾아뵙겠다고 접어둔 마음이 여럿이다. 찢긴 페이지가 있어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제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자식들은 그렇게 어머니를 사용했다.
우리는 시간이 충분하리라 생각하여 부모님과의 시간을 다른 일보다 뒤로 미룰 때가 많다. 언젠가 읽은 생떽쥐페리의 <야간 비행> 에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참 와닿는다. "~일들을 '시간이 날 때' 로 조금씩 미루어왔음을 깨달았다. 마치 언젠가는 시간 여유가 생기기라도 할 것 처럼~." 아마도 그 시간은 연기만 될 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필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깨달았다.
낡고 오래된 책이지만 검지로 꼭꼭 눌러가며 정독할 수 있는 시의 화자가 부러운 날이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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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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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