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일요산문] 시린 눈길과 눈길이 따뜻한 우리의 길로 펼쳐져야 할 때
  • 손병걸 시인
  • 등록 2024-12-29 00:00:12
  • 수정 2025-01-18 13:45:47

기사수정
  • - -시, '눈길'을 중심으로

어느새, 2024년 끝자락이다. 곧 해가 바뀔 1월이 열릴 것이다. 이맘때면 몰아치는 찬바람을 밀치듯 곳곳에서 치르는 행사들이 있다. 삶이 버거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눈길들이 모이는 일이다. 혹자는 꼭 연말연시에만 치르는 행사여서 아쉽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언론이나 방송은 연말을 정돈하는 의미로 불우이웃돕기를 중심으로 다룬다. 사실 연말이어서도 그러하지만 실제 가장 어려운 시기인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행사 중 자주 선보이는 행사 하나가 점점 더 얼음장이 되어가는 산동네를 달구는 연탄배달 봉사다. 사실 그 행사 말고도 따뜻한 눈길들은 어렵고 힘든 삶을 향해 멈춤 없이 다가가고 있다. 겨울 말고도 계절에 상관없이 온정을 베풀고 있다는 말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내가 그 눈길들을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오늘도 현관 앞에 김장김치 한 통이 놓여 있다. 해마다 봉사단체들이 주민센터에 모여서 직접 담근 김치이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수년째인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평범한 김치 한 통이 아니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겨울바람이 뜨거워지는 김치 한 통이다. 깊은 밤 빗장뼈를 훑는 냉기를 데우는 김치 한 통이다. 언 마음이 따뜻해지는 김치 한 통이다. 지속적인 경제발전 속에서도 언제나 삶이 버거운 사람들은 존재한다. 비단 물질의 빈곤뿐만이 아니다. 이웃의 눈길이 끊긴 채 마음의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웃을 호명해야 한다. 그 누구든 언제나 몸과 마음이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 눈길과 눈길이 마주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외로운 상황을 너무 흔히 겪고 있다. 우리는 철저히 사람이 그리운 존재이다. 뜻하지 않게 고독에 놓인 사람들에게 내민 손길이 얼마나 따듯한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핵가족을 넘어 각자도생인 세상 속으로 흩어진 우리의 길을 환하게 펼쳐야 한다. 지금 나와 마주한 소중한 얼굴과 함께 그 환한 길을 손 잡고 걸어야 한다.


눈길 



부르기만 하면 

목소리 쪽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보이지 않는 내 눈을 잊은 것이 아니다 


언제나 의식보다 빨리 

돌아가는 얼굴, 열리는 눈동자 


보여 주는 것이다 


마주친 눈길과 눈길이 

한순간 한길이 되듯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찰나 

반짝 켜지는 얼큰한 이웃 


뜨거운 밥 한 끼 나눌 수 있을 때 

따뜻한 우리가 되는 것이다 


가끔은, 아무도 호명하지 않는 

기진한 사막 한복판 

도무지 끝을 모를 캄캄한 길 


순간 꺼져가는 어깨를 감싸오듯 

이름을 부르는 

빛나는 별들을 한차례 바라보고 있을 때 


눈꺼풀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속속들이 젖는 눈길 속에서 

새로운 길이 펼쳐지는 건 


걸어온 걸음마다 고인 그리움만큼 

환해지는 눈동자의 오래된 습성이다 

 -손병걸 시, '눈길' 전문-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다름이 아닌 내 경험 때문이다. 어찌어찌 두 눈을 잃고 내 삶이 지하방으로 옮겨진 때였다. 전기료도 가스료도 제때 못 냈다. 여름은 그럭저럭 버텼다. 그러나 겨울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사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봄을 맞이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사람은 밀린 내 요금들을 처리해 주었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내가 알아낸 정보는 이름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다방면으로 긴 시간 물색을 해도 찾을 수 없었다. 딱한 내 사정이 누군가를 통해 전해졌는지 머리맡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간혹, 뉴스에서 나와 비슷한 체험담을 들려 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은 더 큰 생각으로 확장하며 나도 어딘가에 사랑을 전하려 노력한다. 좋은 일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랑을 받아 보면 그 기쁨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연말연시에 눈길을 맞추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겨울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길을 던지지 않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 겨울에 가슴 아픈 뉴스를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훈훈한 2024년 끝자락에서 새로운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수출입동향] 2025년 12월, 수출 7000억 달러 시대 개막…반도체 1734억 달러로 역대 최대 대한민국 수출이 AI 열풍을 타고 7000억 달러 벽을 넘으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2025년 연간 수출액이 전년 대비 3.8% 증가한 7097억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일평균 수출도 26.4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심화와 미국의 관세 장벽 등 대외 악재를 뚫고 이뤄낸 성과다.무역수지는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연간 780..
  2.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비빔국수 비빔국수를 시켜 놓고 끼니때마다 비빔국수를 먹을 수 있다면 행복이겠다 싶다가 나는 왜 이 비빔국수가 좋을까 자문하다가 비빔이라는 말에서섞임에 백기 든 사람처럼 잠깐 헝클어지다가 갓 나온 비빔국수를 젓가락으로 뒤섞는다 설기 썬 상추와 채 썬 오이 위에 앙증맞게 얹힌 한 알의 메추리알까지 흰 면을 슬몃슬몃 내주고 무서움도 매...
  3.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나비 가늘고 긴 다리는 망설이고 있었다향기가 더듬이를 떠날 때까지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끔은양면을 펴서 평평하게 엎드렸다가꽃빛에 반해서 얼굴을 대는 동안바람은 날개를 붙잡고 꽃대는 휘청거려어디선가 물방울도 듣고 있는펴졌다 구부러지는 입의 모양모았다가 벌어지는 어깨가 넓어진다꽃가루가 묻으면서 공중에서 깊게 무늬들이 박.
  4. [한국은행 경상수지] 2025년 11월 122억 달러 흑자...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조선업 훈풍 2025년 11월, 대한민국 경상수지가 122억4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1~11월 흑자 규모를 1018억2000만 달러가 됐다.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5% 증가한 601억1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외화 유입을 주도했고, 수입은 468억 달러로 0.7% 감소했다.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드는 구조 속에 상품수지는 133억1000만 달러 흑자를 달성하며 전체 경상수지 개선을 ...
  5. [수출입동향] 2025년 12월 수출 695억 달러로 역대 최대…반도체가 끌고 무선통신기기가 밀었다 2025년 12월 대한민국 수출이 새 역사를 썼다. 반도체 업황 회복과 무선통신기기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달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갈아치운 것이다.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3.3% 증가한 695억 달러를 기록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2025년 6월 이후 7개월 연속 이어진 증가세다.수입은 4.6% 늘어난 574억 달러를 기록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